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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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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2012. 12. 2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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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꼬마리 열매,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나있어 잘 달라붙는다.

 

도꼬마리, 들이나 길가에서 자라며, 높이 1m 정도의 줄기에 거센 털이 나 있다.

열매는 대추씨처럼 생겼으며, 겉에 달린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동물의 몸이나 사람의 옷에 달라붙어 열매가 멀리 퍼진다.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풀씨

겨울이 되면 산새들은 사람 사는 데로 먹이를 찾아 모여든다. 아파트 옆 공원은 박새나 오목눈이들이 아까시나무에서 단풍나무로 떼를 지어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닌다. 팍팍하기만 한 사람 사는 이곳에 그래도 먹을 게 있나 보다. 지난해 태어나 첫 겨울을 보내는 어린 박새는 이 겨울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참나무 가지 끝마다 겨울눈들이 단단한 가죽껍질을 쓰고 겨울을 나고 있다. 그 한 뼘쯤 아래엔 지난겨울 흔적이 흉터처럼 새겨져 있다. 박새한테나 참나무한테나 겨울이란 겨우겨우 견디어 내야 하는 힘든 때이다. 한해살이풀들이 풀씨를 남기고 바삭바삭 말라가고 있다. 이것들은 풀씨로 겨울을 나는 것이다. 땅에 떨어진 풀씨는 새로운 삶을 품고 있다. 그러나 어디로 날아갈지는 날아간 곳이 뿌리를 내리고 살 만한 곳인지 미리 알 수는 없다. 겨울바람에 뒹구는 저 풀씨 가운데 제대로 뿌리 내리고 꽃피는 게 몇 개나 될까? 하지만 도꼬마리를 보면 그렇게 걱정할 것도 없어 보인다. 개천가에는 큰도꼬마리가 열매를 빼곡히 달고서 시커멓게 말라가고 있다. 큰도꼬마리 열매는 고슴도치마냥 가시가 무성하다. 이것은 열매를 만지지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들러붙게 하려는 가시다. 도꼬마리 열매는 짐승털이나 사람 옷에 붙어서 퍼져 나간다. 정말 진드기처럼 잘도 붙는다. 가시 끝이 갈고리처럼 휘어져서 살짝만 닿아도 낚아채듯 착 달라붙는다. 사람들이 이 가시를 본 따서 ‘찍찍이’라 불리는 매직테이프를 만들어냈다. 신발이나 옷에 쓰는 ‘찍찍이’원조는 도꼬마리 가시였던 것이다. 옛날에 들어와 자라던 도꼬마리는 요즘 보기가 흔치 않다. 북아메리카에서 귀화해 온지 30년쯤 된 큰도꼬마리가 더 흔히 볼 수 있다. 큰도꼬마리는 도꼬마리에 견주어 열매가 더 크고 더 많이 달린다. 큰도꼬마리나 도꼬마리 열매를 까 보면 크기다 다른 씨앗 두 개가 사이좋게 들어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씨앗이 서로 하는 역할이 다르다. 크기가 큰 씨앗은 이듬해 바로 싹을 틔우지만 크기가 작은 씨앗은 바로 싹 틔우지 않고 더 나은 조건이 될 때까지 때를 기다린다. 도꼬마리 뿐 아니라 많은 풀씨들이 이처럼 역할이 다른 씨앗을 만들어낸다. 제비꽃이나 물봉선은 꽃을 피워 주로딴 꽃가루받이로 만든 씨앗과 꽃을 피우지 않고 자기 꽃가루받이로 만든 씨앗이 맺히는데, 열린 꽃에 맺힌 씨앗을 튕겨 날릴 때 두배쯤 멀리 날아간다. 구절초 같은 국화과 꽃은 머리모양꽃차례 바깥쪽의 혀모양꽃이 맺은 씨았보다 안쪽 대롱모양꽃에서 만들어진 씨앗이 더 멀리 날아가고 잠자는 기간도 길다. 명아주 씨앗은 검정색과 갈색 두 종류다. 검정색은 봄에 바로 싹을 틔우지만 갈색은 조건이 맞을 때까지 땅 속에서 잠을 잔다. 풀들은 이렇게 바로 싹을 틔우는 씨앗과 그렇지 않은 씨앗을 만들어 경쟁도 줄이고 좋은 기회도 늘리는 것이다. 땅속은 온통 잠자는 씨앗들로 가득하다. 겨울바람에 뒹구는 풀씨가 대책 없이 굴러다니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도꼬마리 씨 수명은 16년쯤 된다니까 적어도 10년쯤은 내다보고 준비한 것들이다. 작은 풀씨 하나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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