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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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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2012. 12. 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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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일렁인다. - 억새

 

텅 빈 들녘은 횡 하고, 산자락은 나뭇잎이 다 떨어져 속살을 훤히 드러냈다. 거기는 이제 억새 세상이다. 겨울 칼바람에 바삭바삭 말라 가는 언덕위에도 억새가 일렁인다.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가 한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우리 가슴을 쓸어 줄 것처럼 정겹고 푸근하다. 억새, 정겨운 풀이름이 너무 억세고 거칠다. 하지만 습기 없는 팍팍한 땅에서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그 습성이 이름 그대로이다. 또 억새가 아직 푸르름을 간직했던 시절 그 날카롭고 억센 잎새에 손가락을 베어 본 사람은 억새라는 이름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 억새 잎 가장자리엔 잔 톱니가 나 있어서 살짝 스쳐도 살갗을 베일 수 있다. 하지만 억새 꽃이 피면 솜털을 나부끼는 정겹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바뀐다. 억새는 갈대와 닮아서 구별하지 못하고 자주 바뀌어 불리곤 한다. 하지만 억새와 갈대는 습성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억새와 갈대는 사는 곳이 다르다. 갈대는 억새처럼 건조한 곳에서는 살 수 없다. 바닷가나 강가, 늪 둘레 같은 습지에서만 살아간다. 억새와 갈대는 색깔이나 모양도 다르다. 갈대 이삭은 억새보다 더 짙은 갈색이다. 갈대 이삭엔 털 달린 씨앗이 성글게 달리고 씨앗이 쉽게 바람에 날려가서 이삭가지만 앙상하게 남고 만다. 억새는 털 달린 씨앗이 갈대보다 포실하다. 갈대 이삭의 가지는 띄엄띄엄 나지만 억새는 이삭가지가 우산살처럼 뭉쳐난다. 그래서 억새 이삭은 하얗게 일렁인다. 억새 줄기는 속이 비어 있지 않지만 줄기 속이 비어 있는 갈대보다 더 부드럽게 바람에 너울거린다. 갈대는 줄기가 억세서 억새만큼 부드럽게 나부끼지 못한다. 바람이 불면 갈대는 서걱거린다. 흔히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억새는 그 이름 때문인지 억세다는 인상을 갖게 되지만, 오히려 억새가 바람에 더 부드럽게 흔들린다. 억새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뿌리를 내렸다.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습성을 써서 시가지 빌딩 둘레 녹화용으로 심어졌고 또 길가에 토양보존용으로 심어졌다. 이젠 그곳 사람들의 친근한 풀이 되어 압화나 드라이플라워로 쓰인단다. 억새는 사료로 쓰였고 초가지붕을 이을 때 짚 대신 쓰이기도 했다. 요즘은 넓은 억새밭을 조성해서 관광 상품으로 만든 곳이 많다. 정월대보름 같은 때에는 쥐불을 놓아 또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예전엔 들불은 민중이 품는 분노와 투쟁을 상징하는 것이었는데, 이젠 그저 어른들이 하는 퇴행적인 불놀이쯤으로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노동자 삶을 팍팍해지고 가슴은 바짝 말라 버렸다. 노동자 가슴은 마른 억새처럼 불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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