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부근 고척시장 인근 공터에서 큰개불알 풀을 보다.
고통 없이 꽃 필 수가 없다.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집 부근의 시장으로 향하는데 꽃샘추위가 겨울 추위 못지않다. 바람이 거칠게 불어 대며 옷깃을 파고든다. 손수레에 생선 몇 개 올려놓고 파시는 할머니는 이런 날에도 어두워지는 저녁까지 온기 한 점 없는 길가에 그대로 앉아 계셨다. 발치에 놓아둔 물통에 물이 꽁꽁 얼거나 말거나, 생선을 사면서 잔뜩 움츠린 어깨가 괜히 부끄러워 춥지 않으시냐고 물어보지만 대답 대신 자반고등어 한 손을 절반으로 싹둑 잘라 봉지에 담아 주신다. 그 태평한 모습이 꼭 ‘한 겨울도 이렇게 넘겼는데 이까짓 꽃샘추위쯤이야’ 하시는 것 같다. 할머니 모습은 꼭 한겨울을 견뎌낸 두해살이 잡초를 닮았다.
지난 설 꽃을 피웠던 큰개불알풀은 이번 꽃샘추위에 어찌되었을까? 두해살이풀인 큰개불알풀도 한겨울 추위를 고스란히 견뎌냈으니 이까짓 꽃샘추위야 두려울 게 없을 게다. 일찍 피었던 꽃잎 몇 장 미련 없이 떨어뜨리고 다시 햇볕 따스한 날을 기다리겠지.
두해살이풀 생존전략은 다른 식물이 자라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난가을 미리 싹을 틔우고 자라서 긴 겨울을 견뎌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추위는 오히려 두해살이풀이 살아가는 데 더 나은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풀들은 한겨울에도 햇볕이 따뜻한 날에는 겁 없이 꽃을 피운다. 큰개불알풀은 주로 따뜻한 남쪽 지방에 자라는 탓에 1,2월에도 꽃 피운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봄이 아직 일러 꽃가루받이 해 줄 곤충이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꽃등에나 벌을 기다리던 큰개불알풀은 해가 조금이라도 기울라치면 꽃잎을 서둘러 닫아 버린다. 암술 양쪽으로 있는 두 개의 수술이 꽃잎이 닫히면서 암술 쪽으로 밀려가서 제꽃가루받이를 한다.
유럽이 원산지인 큰개불알풀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널리 퍼져 자라고 있다. 아시아 동쪽 끝인 한반도에 큰개불알풀이 처음 기록된 때가 1940년이라 하니 이곳에서 타향살이도 반세기를 넘겼다. 전에는 남쪽 지방에서나 볼 수 있던 큰개불알풀이 요즘은 지구 온난화 탓인지 서울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큰개불알풀은 자생식물인 개불알풀보다 훨씬 흔한 풀이 되어 버렸다.
큰개불알풀 꽃은 작다. 그렇지만 조밥 크기만 한 개불알풀꽃보다는 배가 더 크다. 개불알풀 꽃은 분홍색이고, 큰개불알풀 꽃은 하늘색이다. 꽃의 크기와 색으로 두 꽃을 구별할 수 있다. 개불알풀이나 큰개불앞풀이 조금은 부르기 민망한 개불알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열매 생김새 때문이다. 열매가 두 쪽으로 갈라진 데다 털까지 나서 영락없이 개불알을 빼닮았다.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은 일본 이름을 그대로 한글로 풀어서 부르는 것이란다. 그래서 봄까치풀이라고 고쳐 부르자는 이들도 있다.
큰개불알풀이라는 학명도 재미있다. 학명에 나오는 베로니카는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때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는 여인 이름이다. 큰개불알풀 꽃을 자세히 보면 예수 얼굴이 보인다고 한다. 큰개불알풀 꽃은 대개 네 갈래로 갈라지는데 세가닥은 크기가 비슷하고 한 가닥은 폭이 좁고 길다. 크기다 같은 세 가닥을 머리카락으로, 좁고 긴 가닥을 수염으로, 수술을 눈으로, 암술을 코로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예수가 흘렸던 땀방울이 묻은 베로니카 손수건처럼 큰개불알풀 꽃에도 겨울을 견뎌온 고통이 스며 있다. 고통 없이 꽃을 피울 수는 없나 보다.
[충남여행]면암최익현선생의 유적지 모덕사 - 유교의 충효사상에 가려진 민초의 눈물.... (0) | 2013.03.12 |
---|---|
[군산여행]기찻길 옆 오막살이... 경암동 철길마을 (0) | 2013.03.11 |
인생은.... (0) | 2013.03.04 |
[부천여행]하루에 즐기는 새로운 세계여행, 아인스월드 (0) | 2013.02.25 |
[부천여행]만화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던 한국만화박물관 (0) | 2013.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