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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여행]텅빈 그 자리에서 충만함을 느끼다 - 거돈사지

길, 떠남, 회상, 그리고...

by 강물처럼~ 2014. 5. 1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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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부론면에 산 하나를 두고 법천사지와 거돈사지가 있습니다. 법천사지를 둘러보고 거돈사지로 향했습니다.

  법천사지에서 거돈사지까지는 차로 6쯤 됩니다. 절터가 어딨을까 궁금해질 즈음에

왼쪽에 석축이 나타났는데 계단 위로 올라서니 거돈사지가 드러났습니다.

잘 다듬어진 절터는 탑 하나, 금당터만 오롯하게 남아 있더군요.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무너진 절터에 뭐 대단한 게 있어서? 그런 것은 없습니다.

산사는 수백년을 버텨온 절집과 금박 입힌 부처라도 있고,

운이 좋으면 예의바른 보살이 점심공양을 권하기도 하지만 절터는 그저 절터일 뿐이죠.

그래도 절터에 가면 찡합니다.

 

 

 

 

 

 

 

 

 

 

절터는 휑합니다. 휑한데 끌립니다.

천년고찰에 가면 화려한 단청도 법당도 건성으로 보지만, 폐사지에선 탑이라도 남아 있으면 감사하죠.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연화 무늬 받침돌만 보고도 온갖 상상을 다 해보게 됩니다.

 

 

 

 

 

거돈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9세기경으로 추정됩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말기와 고려시대 초기 사이에 중건되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창건 이후 11세기에 고려의 명승 원공국사(圓空國師)가 송나라에 유학하여

선종인 법안종과 천태종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 왕사가 되었다가 만년에 하산하여

거돈사에서 입적한 것으로 보아 당시 거돈사의 사세와 규모가 상당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돈사도 상당히 큰 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득하게 넓은 터가 그 규모를 말해주고 있더군요.

탑 뒤로는 부처를 모셨음직한 좌대가 있었는데, 많이 상해서 좌대 같지 않고 그저 바윗덩어리 같아 보였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말쯤 절이 세워졌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으로 보입니다.

절터가 자리한 원주 부론은 남한강과 섬강이 합류하는 지역으로 조

선시대에도 교통의 요충지였고 남한강을 따라 한반도의 배꼽 충주로 이어집니다.

고대부터 남북통로였고, 고려 때는 전국의 12조창 중 하나인 흥원창도 있었다고 합니다.

왜군이 수륙교통의 요충지를 먼저 장악하려 했음은 뻔한 이치죠.

나라를 위해 들고 일어선 승병에 곤혹을 치렀던 왜군은

북상하다 법천사와 거돈사에 이르자 절에 불까지 질러버렸을 것으로 추측된답니다.

이런 수난은 임진왜란 때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엔 거돈사의 원공국사승묘탑은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해방 후 반환됐고

탑비는 절터로 오지 못하고 경복궁에 있다가 용산국립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불가에 여여(如如) 하신가?”란 인사말이 있습니다.

여여란 한결같고 변함없다는 뜻입니다.

나무 부처가 잿더미로 변하고, 쇠 부처가 녹아내린 절터에 가면 바람으로 화한 부처가 나에게 묻는 것 같더군요.

그대는 여여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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