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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여행]원주 민주화 운동의 성지, 원동성당을 가다

길, 떠남, 회상, 그리고...

by 강물처럼~ 2014. 7. 1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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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돌아오는 길, 시내에 있는 원동성당을 다녀왔습니다.

원동성당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된 근대문화유산이기도 하죠.

 

 

 

 

 

원동성당은 1913년에 고딕식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6.25전란으로 불에 타 훼철된 것을

1954년에 재건한 건물로써 정면 중앙부에 종탑이 위치해 있고,

종탑의 상부는 돔형으로 구성되어 있어 순수한 고딕식과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 성당은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 관련이 깊어

지학순 주교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그리고 반독재투쟁의 성지로 알려진 성당이기도 하죠.

 

 

 

 

 

 

 

 

 

이 성당은 1907년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자 네 번째로 지어진 풍수원성당보다

5년 늦게 지어진 성당이었으나 6.25전란 후 시멘트 블럭으로 재축되는 과정에서

벽돌조로 구성된 전통적인 고딕수법에서 벋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햇살에 비친 스테인드글라스 문양이 무척 따사롭게 보이네요.

 

 

 

 

 

 

 

 

 

 

 

 

 

 

 

원동성당은 지학순 주교께서 초대 원주교구장을 지내신 곳이기도하죠.

지학순주교는 1968년에는 원주 지역사회 문화활동의 전당인 가톨릭센터를 세우는 등

천주교회 주교로 봉직하는 동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1970년 원주문화방송을 설립하는 데에 40% 지분을 갖고 참여하여

방송을 통한 복음 전파와 지역사회 언론 발전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김지하 등 의식있는 청년들을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주 문화방송을 둘러싼 부정에 분개하여 197110월 원주시 원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회정의 구현과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3일에 걸쳐 교구내 사제, 수도자, 평신도와 함께 열게 됩니다.

이것은 한국 천주교회가 처음으로 주교의 지도아래 공개적, 대중적으로 사회악과 부정부패에 저항하고 나선 큰 사건이었죠.

 

 

 

 

 

시야를 인권문제로 돌리게 된 그는 19729월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회 이사장으로 추대되었고

10월에는 가톨릭 노동청년회, 가톨릭 평신도 도지사직 전국협의회, 가톨릭 정의평회위원회, 가톨릭 여성연합회 총재주교를

맡아 교회 안팎에서 힘없고 억눌린 자의 인권옹호에 나섰다고합니다.

 

 

 

 

 

 

 

 

 

 

그는 박정희의 유신정권을 계속 비판하던 중 197476일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다가

김포공항에서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었습니다. 이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710정의의 실천은 주교들의 의무라는 성명을 내어 지지했죠.

다음날 석방되어 수녀원에 연금되었으나 723유신헌법은 무효라는 양심선언을

내외신 기자 앞에서 발표하고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197489일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으나,

주교의 체포와 투옥은 한국 천주교가 집단적으로 정의구현에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하죠.

 

 

 

 

지학순 주교께서는 197410월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는데,

이를 계기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출범하였다고 합니다.

226일 동안 옥고를 치르고 1975218일 석방된 후에도 한국 민주화의 지주로서 많은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석방 후에도 에큐메니컬 운동 단체인 한국교회 사회 선교협의회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인권옹호에 적극 나섰다고 합니다.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크지만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큰 역할을 하신 지학신주교께서 계셨던

원동성당, 저녁시간이었지만 꼭 들리고 싶어 발길을 옮겼죠.

조용한 분위기와 엄숙함에 잠겨 한참을 사색의 시간을 가지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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