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서산여행]조선시대 읍성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서산 해미읍성

길, 떠남, 회상, 그리고...

by 강물처럼~ 2014. 7. 24. 12:34

본문

몇일 전, 벼르던 서산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당일치기로 간데다 출발을 조금 늦게 하는 바람에

가려고 했던 곳을 다 둘러보지 못했네요.

어쨌거나 첫번째로 해미읍성을 들렀습니다.

하필 간 날이 날씨가 흐려 사진이 영 별로네요. ㅠㅠ

 서산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읍성들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마침 국악교향악단의 연주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랜 읍성과 국악의 조화가 꽤 근사하더군요.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곳으로, 개화기에 충청도 각 고을에서 잡혀온

천주교도들이 고문과 죽임을 당한 현장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해미읍성 내에 있는 300년 된 이 회화나무는 충청도 사투리로 호야나무라고 불립니다.

이 호야나무는 1866년에 병인박해라고 불리는 천주교 박해 사건 때 충청도 각 지에서 잡혀온 약 1천명의 신자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고문을 당하고 처형까지 당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 뻗은 나뭇가지에는 고문에 사용된 철사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또한 호야나무를 비롯해 신자들이 수감되었던 감옥터, 처형의 장소로 쓰였던

개천 돌다리판과 진둠벙 등이 해미읍성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어, 매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하네요.

 

 

 

 

 

 

 

 

 

 

 

 

 

 

 

 

 

 

 

 

 

 

 

 

 

 

 

 

 

 

 

서산 해미읍성은 일제강점기를 지내며 폐허가 되었는데,

1974년에 동문과 서문의 복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곳의 문과 객사 2, 동헌 1, 망루 1개소가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와,

현재의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외곽석장기지(官衙外廓石牆基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고 하네요.

 

 

 

 

 

 

 

 

 

 

 

 

 

 

 

 

 

 

 

 

 

 

 

 

 

 

 

 

 

 

 

 

 

 

 

 

 

 

 

 

 

 

 

 

 

 

 

 

 

 

 

 

 

 

읍성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청허정,

청허라는 뜻은 잡된 생각이 없어 마으이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이랍니다.

조선시대에 이곳에서는 양반들이 시회를 열거나 시를 읊던 곳이라고 하네요.

 

 

 

 

 

 

 

 

 

 

 

해미읍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방어 요충지였던 이 지역은 고려 말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아 피해가 막심했던 곳으로,

대책 마련을 위해 조선 태종 17(1417)에 축조 사업이 시작되었고, 세종 3(1421)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습니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성벽의 안쪽은 흙으로 비탈지게 쌓아 외부의 충격을 흡수 할 수 있도 지어졌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라고 합니다

 

 

 

 

 

 

 

 

 

 

 

 ㅎㅎㅎㅎ 벌써 코스모스가 이렇게 피었네요^^

 

 

 

 

해미읍서은 조선 태종17(1417)부터 세종3(1421)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이 곳에 옮기고자 축성(築城)되었으며,

효종3(1652)에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성이었다고 합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