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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행- 행궁 건축의 백미, 화성행궁 구석구석 둘러보기

길, 떠남, 회상, 그리고...

by 강물처럼~ 2013. 1. 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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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대왕이 천도를 꿈꾸며 건립한 화성행궁을 둘러봅니다.

화성행궁은 조선행궁 건축의 백미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고 합니다.

사적 제478호인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건립되었습니다.

건립 당시에는 600여칸으로 정궁 형태를 이루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행궁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와서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습니다.

1980년대 말, 복원추진위를 구성하여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03년 10월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풍루, 황성행궁의 정문입니다.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이랍니다.

 

 좌익문, 중앙문 앞 동쪽에 있는 문으로 좌익이라는 이름은 ‘곁에서 돕는다’는 뜻이랍니다.

중앙문 바로 앞에서 도와 행궁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비장청, 조선시대 감사, 유수, 병사, 수사 등을 따라 다니는 관원을 비장이라고 하는데,

비장청은 화성유수부 비장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랍니다.

 

 처마에 고두름일 줄줄이 맺혔습니다.^^

 

 

화성행궁의 느티나무는 600년 이상된 고목으로 화성 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런 나무랍니다.

영목, 신목 등으로 불려왔으며 예부터 잎이나 가지를 꺽으면 목신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이 느티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면 모든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서려있습니다.

 

 

 

 

 

 

 

 유여택, 평상시에는 화성 유수가 거처하다가, 정조대왕이 행차시 잠시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입니다.

 

 

한 켠에 뒤주체험이라는 푯말과 함께 뒤주가 놓여 있네요. 잠시 사도세자가 떠오르며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앙부일구,해시계의 모습입니다.

 

 

 

 

 

 봉수당,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이곳에서 정조대왕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다고 하네요.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누문, 경룡관입니다. 경룡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한답니다.

 

 

 

 

 당시의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군요.^^

 

 

 

 

 

 

 

 

 

 

 

 

 

 

 낙남헌, 1795년 혜경궁 홍씨 회갑연 기간 중 과거시허과 양로연 등의 여러 행사가 열렸던 곳입니다.

 

 

장락당, 화성행궁의 침전으로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빌며 정조대왕이 직접 편액을 써서 걸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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