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에서 강화도는 숱한 외침의 가운데 서있던 곳이죠.
고려시대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외침에 맞선 저항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나 몽고의 침략에 맞선 60년 전쟁의 한 가운데 있었던 곳이 바로 강화 고려궁지입니다.
고려궁지 정궁의 정문인 승평문입니다.
지금도 고려궁지 윗쪽에서는 발굴이 한창 진행되고 있더군요.
승평문을 지나 고려궁지로 들어서자 시원한 나무그늘이 방문객들을 반겨주네요.^^
강화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 있던 곳입니다.
1270년(원종 11년) 몽고와 강화조약을 맺고 환도하기 까지 38년간 사용되던 고려궁궐터죠.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무신 정권의 수장 이었던 최우(崔瑀)가 군대를 동원하여 이곳에 궁궐을 지었다고 합니다.
비록 규모는 작았으나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고 궁궐의 뒷산 이름도 송악(松岳)이라 불렀답니다.
강화도에는 정궁(正宮) 이외에도 행궁(行宮)·이궁(離宮)·가궐(假闕) 등 많은 궁궐이 있었는데,
이곳 강화읍 관청리 부근은 정궁이 있었던 터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조선시대 지어진 사고인 외규장각의 모습입니다.
강화의 고려 궁궐은 1270년 송도로 환도할 때에 몽골의 압력으로 모두 허물어졌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고려 궁궐터에는 강화의 지방 행정관서와 궁궐 건물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죠.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강화의 궁궐은 행궁과 장녕전, 만녕전, 외규장각 등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강화유수가 업무를 보던 동헌과 유수부의 업무를 보던 이방청 등 조선시대 유적만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 강화유수부 이방청 건물입니다.
수리중이라 내부를 둘러볼 수 없더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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