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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온 몸으로 이야기한 노래꾼 연영석

사람들

by 강물처럼~ 2010. 10. 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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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온 몸으로 이야기하는 노래꾼 연영석

 

 

 

내가 형을 알게 된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부산에서 연극 한답시고 극단새벽에서 단원활동을 할 무렵이었다. 문화예술인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이래저래 활동하는 선배들을 만날 무렵이다.

내가 아는 형은 무척 섬세한 사람이다. 대학 다닐 때 미술을 전공했고 그래서 그쪽으로도 조예가(?) 깊다.

형의 노래는 투쟁현장에서 많이 불려지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형을 기억하고 좋아한다. 왜냐하면 형의 노래에는 그가 살아온 삶과 민중에 대한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7월 사무연대노조 자유로운공동체 지부 전체 모임이 있었다. 사무연대노조는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소속의 지역노조다.

이 모임에 영석이 형이 참여했고 함께 노래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날 다른 일정 때문에 참여를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아래 글은 사무연대노조 웹진에 올라온 글이다.

 

 

 

 

 

 

순수한 청년 문화노동자 연영석 이야기

 

새로 이사한 노조 사무실 앞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투쟁의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문화노동자 연영석 동지였다. 사무연대노조 자유로운공동체지부 7월 전체모임은 연영석 동지의 노래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지친 이들과 함께 노래부르며 위안을 주고 싶었다는 연영석 동지.. 자유로운공동체지부가 모처럼 발 빠르게 움직여 그 첫 자리의 포문을 여는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연영석 동지는 처음 마련된 자리인 만큼 정식적으로 준비해온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이 세상의 온갖 부조리함에 아파하면서, 햇살처럼 따뜻하게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연영석 동지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자리였다. 그리고 공감했다.

 

 

## 첫 번째 노래이야기 - 공장

“음악작업을 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관심, 그리고 삶이 동떨어질 수 없다. 물론 돈이 되고 트렌드에 맞는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노래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계속 못 만들다가 그 친구들과 5년 정도 같이 지낸 후에야 코리안 드림이란 곡을 쓸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공장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자기 사업장 임금투쟁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사회적인 투쟁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이 사회적으로 해야할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데 우리는 잘 못하는 것 같다.”

 

## 두 번째 노래이야기 - (가제) 현실

“나는 문화노동자이기도 하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투쟁의 현장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한정적이다. 레크레이션처럼 ‘재밌게 해주세요’, ‘분위기 좀 살려주세요’ 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농담 삼아 ‘전 개그맨이 아닌데요..’라고 답한다. 보통 그런 것이 지금 형식화된 우리인거 같다. 우리조차도 큰 것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 행사를 치를 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하고, 그래야만 뿌듯함을 느끼고... 그러나 적게 모여도 할 수 있는 건 많다고 생각한다. 또 요즘은 정부에서 기금을 받지 않으면 사업 못하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다. 나도 그렇게 닳고 닳아가고 있지 않나 라는 느낌으로 만든 곳이다.”

 

## 세 번째 노래이야기 - 허우적되다

“나는 차가 없어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늦은 시간 귀가하다보면 머리에 숱도 별로 없는 아저씨가 휘청휘청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느낌을 노래로 담고 싶었다. 살면서 점점 내가 어릴 적 뭐가 되고 싶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런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는 것..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허우적되고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활동을 하지 않는 친구들을 만나면 아이얘기, 부동산 얘기 등을 하는데 아는 게 없어 낄 수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겠거니 한다.

 

## 네 번째 노래이야기 - 나약해

“나는 비정규직에 관심이 많다. 노래를 부른지 11년 정도 됐는데 대공장에서 노래를 부른 적은 만도밖에 없다. 금속연맹에서 파업문화지지단을 만들어 만도에 갔던 것인데 그 이후로 파지단을 한 적이 없다. 예전에는 단위사업장마다 문화부장이 있어 적은 규모일지라도 조합원들과 어떻게 문화적으로 만날 것인지 함께 고민했엇다. 정규직 동지들과 비정규직 얘기를 하다보면 정규직 동지들이 더 위축되는거 같다.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미안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지만, 그럴수록 내 고용안정이 중요하고,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뒷걸음질 치는 거 같다.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

 

 

## 다섯 번째 노래이야기 - 무제

“작년에 시골에 머물면서 만들었던 노래다. 제목은 아직 없다. 햇빛을 받으며 들길을 걸으면서 든 생각이 ‘내가 세상을 모른 척하면 이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왜 굳이 저 복잡한 곳에 가서 살아야 하나’라는 거였다. 쉬려고 시골로 왔는데 핸드폰 문자로 각종 투쟁 상황들이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모른척 하면 별거 아니구나.. 저기서는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눈 딱감고 쌩까두 큰 문제는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시골에서 지냈던 게 좋았다. 햇빛만으로도 행복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흙도 밟으며 살아야 한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좀 쉬었으면 좋겠다. 그런 느낌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 이 노래는 내가 만든 곡 중에 가장 밝은 곡이다. 햇빛을 쬐니까 확실히 밝아졌다. 예전에 우울증이 걸린적 있었다. 몇 년전 한 달사이에 13분인가 돌아가신 적이 있었다. 집회에 나갈 때 마다 그 동영상을 계속 트는데 그 장면이 너무 보기 싫었다. 그 중 두 분이 나하고 친분이 있었다. 지금 열사분들의 자제분들을 위해 명동에서 노래부르는 사람들이 들불장학회를 꾸려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또 방글라데시 외곽에 있는 마을공동체에 공부방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 여섯 번째 노래이야기 - 니가 나이가 몇인데

“운동을 한다는 것이 사람과 잘 뒤섞이지 못하고, 늘 경계하고 그런 게 있다. 우리 운동사회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 만족, 자기 위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품을 수 있는 운동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들만큼 정체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없다. 그게 다가 아닌데...”

연영석 동지는 우리에게 그 동안 집회에서는 잘 부르지 못했던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곡으로는 집회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 운동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명곡 ‘구르는 돌’을 선택했다. 그렇게 자유로운공동체지부 7월모임은 구르는 돌을 연영석 동지와 함께 부르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 힘껏 굴러라, 구르자~ 우린 구르는 돌.. 오, 제발 멈추지 말자~♬

 

 

연영석 동지는 스스로를 ‘문화 노동자’라 부른다. 노동자로서 내 존재의 선언이라고 밝힌다.

음악을 하는 문화노동자이지만  연영석 동지는 홍대 미술대학을 나왔다.

"돈을 벌어야 하나, 미술학원에 취직이나 할까 생각을 많이 했죠. 돈을 벌다 돌아오면 운동은 어떡하지, 생각했더니 운동을 떠나선 살 수 없겠다 싶어 시작한게 노래였다. 전에도 음악하는 친구들을 보면 멋있다, 나도 해보고 싶다, 생각은 했죠. 근데 현장을 다니다보면 노래 부르는 사람들한테 밥을 주거든요. 그래서 노래 부르면 ‘밥’은 굶지 않겠구나, 생각하고 시작했단다.

첫 데뷔 무대는 록밴드 ‘천지인’의 공연을 펑크 낸 가수의 ‘대타’였다. 이후 지금까지 ‘돼지 다이어트’ ‘공장’(2001), ‘숨’(2005) 세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2006년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칼국수, 라면, 부품, 돌 등 이전의 민중가요와는 다른 소재를 갖고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가 하면, 신자유주의 사회를 사는 민중의 삶을 통렬히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노래는 유쾌하고 전복적인 동시에 슬프고 처연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공감을 얻기 충분했다. 때문에 음악 그 자체만으로 평가받지 못하던 민중가요에 대한 인식도 바꿔놨다. 40대 중반이라고 믿기지 않는 동안의 순수함을 간직한 연영석 동지는 여린 등짝 위에 항상 기타를 매고 다닌다. “안녕하세요, 문화노동자 연영석입니다.” 순박한 웃음에 단호한 어투. 그가 함께 하고 있어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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